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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은 얘기다. 하지만 생활계획표의 어디에 독서 시간을집어 넣어야 하는가?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에?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에? 학교를 오갈 때? 가족 모임 시간에? 숙제를 해야할 시간에?
어느 시간에 책을 읽어야 할까?
이건 심각한 문제다.
그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언제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 보면 책 읽을 마음이 생기질 않는다. 꼼꼼하게 생활계획표를 짜다 보면 누구도 책 읽을시간을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도, 청소년들도, 어른들도 다 마찬가지다. 생활은 언제나 독서를 가로막는 장애다.
"독서요? 정말로 책을 읽고 싶기는 해요. 하지만 직장에 나가야지, 아이들도 챙겨 줘야지, 게다가 집안 일까지 하려면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아요."
"저도 당신처럼 책 읽을 시간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어떤가. 직장에 나가고, 시장을 보고, 아이들을 키우고, 차를 운전하고, 남자를 세 명이나 사귀고, 치과에 다니고, 다음 주면 이사을 가야 하는 여자은 시간을 내 책을 읽는다. 그런데 하루종일 빈둥거리면서 실업수당이나 받아서 생활하는 이 청년은 왜 책 읽을 시간이 없는가?
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훔친 시간이다(글을 쓰는 시간이나 연애하는 시간처럼 말이다.)
어떤 시간을 훔쳤을까?
말하자면 삶의 의무를 다하는 데 필요한 시간에서 훔친 것이다.
지하철ㅡ의자에 꼭 붙어 앉아 있는 모습이 앞서 말한 생활의 의무를 상징하는ㅡ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서관이 되는 것은 그러 이유 때문일 것이다.
책 읽는 시간은 연애하는 시간처럼 삶의 시간을 확장시켜 준다.
만약 시간표에 맞춰 사랑을 한다면 누가 제대로 사랑을 할수 있을까? 과연 누구에게 사랑할 시간이 있을까?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할 시간이 없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내겐 책을 읽을 시간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끝까지 읽지 못하게 방해했던 것도 없었다.
독서는 사회적으로 계획에 맞춰 시간을 이용하는 것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랑이 그런 것처럼 독서도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문제는 내가 책 읽을 시간이 있느냐 없느냐(게다가 아무도 내게 시간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를 따져 보는 데 있지 않고, 나 스스로 독자가 되는 즐거움을 누리려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는 것이다.
토론을 하면서 한 학생은 단호하게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책 읽을 시간이 있느냐고? 나는 그 시간을 주머니에 넣고 다녀."
그 학생이 문고판으로 나온 짐 해리슨의 <가을의 전설>을 꺼내 보이자 다른 학생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그래서 웃옷을 살 때는 먼저 주머니가 큰지 확인을 해야 하는 거야."

다니엘 페낙, <소설처럼> 중에서
by 아애 | 2012/06/21 08:24 | brouillon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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