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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6   지난 5년 3개월을 시간을 돌이켜본다. [4]
지난 5년 3개월을 시간을 돌이켜본다.

지금 다니는 교회는 아무래도 교회 특성상 새신자보다는 교회 점핑을 해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아직 대학부 생활이라든지 사역모임 같은 것들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볼 기회는 없었지만, 전 교회에 비해 이 교회의 좋은 점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들을 종종 듣고 있다. 아마 담임목사님의 성격상 이 교회가 가지는 대안교회적인 면이 많이 있다보니 그런 것 같다.

나 역시도 온누리 대학부에서 5년 3개월 동안 지내면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이 시대에도 살아 계시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첫 공동체 생활도 하게 되었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일종의 한계(이것은 교회의 한계였다기보다도 내 자신의 한계가 컸다.)에 부딪히면서 교회를 옮기게 되었다. 5년 3개월이라고 쓰고보니 내 이십대의 꼭 절반만큼을 이 교회에 담았었다. 물론 그 중간에 6개월씩 두 번의 타지 생활을 하기도 했었고, 적만 그곳에 두고 주일 예배조차 제대로 드리지 않은 시간들도 있었다.

나는 온누리에서 처음 믿음을 갖게 되었고,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바른 믿음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었다. 다른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왔다든지 하는 사람을 온누리에서도 종종 보았지만 이 교회를 다니면서 그 전 교회에서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교회를 옮긴 사람들을 보면서 온누리가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교회라는 사실이 감사하다.

5년 동안 늘 해왔던 생각이고, 나눴던 말이지만 정말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한 게 아니었다. 이만큼 학교를 다니면서도 학과 생활이라는 게 늘 어색하고 불편한 옷을 입은 것만 같은데 혈혈단신 홀몸으로 이삭 공동체에 가서 적응을 하네 마네 하는 생각도 없이 잘 붙어 있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새삼스럽게 이 생각이 또 드는 것은 지금 다니는 이 교회에서도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3월 둘째 주 첫 예배를 드리고 와서 시절 좇아 꼴을 먹이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이후에 했던 1년 간의 임원단 생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간이지만 5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보자면 이 시간과 이 때 만난 사람들 모두 역시 선물이다. 드림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다. 두번째 가족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은 건 단순히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동고동락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고, 그 평생 이후의 삶을 같이 꿈꿀 수 있는 영적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 관계를 통해서 배우게 된 것들이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많다.
사람 가려 사귀는 데 이력이 난 나인데,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할만한 사람(이런 표현이 읽는 누군가에게는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난 정말 모든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봐왔고 보고 있다.)이라고는 없는데 그 사람들과 이만큼 지내게 된 것은 그 사람 개개인을 넘어선, 기독교적 표현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 안의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만남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다음은 내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나는 앎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알아가게 되는 지적 만족이 다른 만족들보다 나에게 크게 느껴진다. 이 욕구가 말씀에 대한 욕구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바이블 아카데미를 비롯한 많은 양육 프로그램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기도 한데 온누리 대청은 BA 필수코스를 CDC 다음 CBC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BEE 갈라디아서 프로그램을 수료하면서 그 이전과는 다른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의 초석을 닦을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전코스, 리더십 코스 등을 수료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은 구현우 목사님의 근 한 학기 동안의 로마서 강해 설교. 솔직히 말하면 이 시간 이후로 2-3년 동안 신앙적 성장이 거의 없었던 거나 다름 없다. 강해 설교라는 것을 처음 들어봤었는데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고 그 말씀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깊이 알게 되었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왜 기독교는 결국 모든 교리가 십자가를 관통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해 알게 되면서 삶의 초점이 바뀌게 되었다. 이 이후에 BEE 로마서 프로그램을 신청한 적이 있었는데 결국 수료는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슈퍼대형교회인만큼 대학부 생활을 하면서도 대청 프로그램 등을 통해 위 아래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의 신앙을 맛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장로교이긴 하지만 초교파적인 모습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도 솔직히 교파에 대한 이해가 거의 전무하다.


교회를 다니면서 힘들었던 때도 있었다. 신앙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겪는 문제들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과정 중에 있다. 제일 먼저 다가온 문제는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었다. 이것은 소위 성령체험과 연결되는 문제였다. 사람들은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면서.."라는 식의 말들을 많이 했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나온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방언이었다.

나는 방언을 못한다. (받지 못했다라고 해야 할까?) 온누리에 처음 와서 방언을 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 수가 많음에 놀랐다. 방언을 구하고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왜 구하는데 받지 못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언을 깊은 마음으로 간절히 구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나는 방언과 같은 소위 성령 사역이라고 하는 것들을 깊이 믿지 못했다. 이것을 내 믿음 없음을 탓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사도행전을 보면서 처음 오순절사건 때 주신 방언은 선교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 그리고 솔직히 이 이후에도 나는 방언을 통해 어떤 신앙의 더 깊은 단계로 들어가고 싶어서 하기 원했다. 방언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면 더 깊이 기도할 수 있다고 하기도 했고, 솔직히 방언 기도 정도는 좀 해줘야 믿음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도 믿음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먼저 내가 가지고 있는 선교에 대한 생각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 나에게 선교란 철저하게 남의 일이었다.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니었다. 이런 나를 돌이켜보면서 내가 지금 방언을 구할 때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으로 방언 구하기를 멈췄었다.

지금도 온누리에서 잘 배웠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는 선교사가 되든지 보내는 선교사가 될 뿐이다.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들었던 방언에 대한 생각 이후 온누리에서 신앙 생활을 하면서 선교적 마인드에 대한 초석을 잘 닦을 수 있었다.

선교에 대한 생각들이 정립되어 가면서도 나는 여전히 방언을 하지 못했고(간절하게 구하지 않았기도 했다.) 방언을 하고 못하고가 본질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내 신앙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방언을 하는 누군가의 성령님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은사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어제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라는 옥성호 씨의 책을 읽었다. 제목부터 대놓고 김우현 감독의 <하늘의 언어>를 짚고 넘어가는 책이다. 이 시대의 방언이 진짜인가 가짜인가의 문제보다도 이제껏 내가 가져왔던 그 모든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만남, 성령 사역 등에 대한 문제의 답을 찾은 듯한 기분으로 책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머리 속이 점점 정리되어져 갔다. 이 책 한 권으로 이것이 정답이다 라고 말하기는 섣부르지만 이제껏 내가 5년간 해왔던 질문에 대해 그 누구도 이만큼 속시원하게 정리해준 적이 없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나의 문제는 이 복음이 참 복음이라면 내 삶에 과연 열매가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내 삶의 초점이 변하였다고는 하지만 내 모든 삶의 모습이 변하지는 않았다.
또 한 가지는 나를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 있는가이다. 여기서의 초점은 부활과 재림이다. 나는 정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대하고 기다리는가? 그렇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 기다린다면 기다리는 사람으로서의 태도가 있어야 하는데 나에게는 그런 태도가 없다. 이 세대의 모든 민족과 열방들이 복음 듣는 그 날을 기다리지 않으며, 그 일을 하기 원하지도 않는다.
두 가지가 모두 종말론적 삶의 태도라는 같은 문제로 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 하루 종일 정말 수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아직 그 생각들을 다 정리하지 못했지만 정리되지 못한 생각이라 할지라도 기록할 필요를 느껴 이 포스팅을 올린다.

늘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by 아애 | 2010/04/26 18:47 | ebenezer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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