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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6   오마이뉴스 안철수 인터뷰에 대한 단상 [6]
2011/08/11   이태원 FEVER [2]
2011/02/05   Comment faire ? [2]
2010/05/07   자꾸만 어디로 가고 싶어
2010/04/26   지난 5년 3개월을 시간을 돌이켜본다. [4]
오마이뉴스 안철수 인터뷰에 대한 단상
오늘 박원순, 안철수 단일화가 발표되기 전, 어제 밤에 오마이뉴스의 안철수 단독인터뷰를 정독했다. 
처음에는 시장직을 놓고 행정은 하고 싶지만 정치는 하고 싶지 않다? 이건 뭔 드립? 이러면서 인터뷰를 보기 시작했는데, 안철수의 서울 시장직에 대한 생각을 한 줄로 거칠게 표현하자니 저런 식의 표현이 나왔을 뿐이고 내실있는 행정을 해야 한다는 그의 의견에 일단은 공감했다. 

포스팅을 시작한 건 서울시장 후보가 누가 됐네 어쨌네 하는 것보다도(당연히 관심있는 문제다) 
인터뷰 중에서 안철수가 서울시장직을 놓고 고민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이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는 데 있어서 기준으로 세우는 세 가지 점들을 말한 부분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인생 행로가 다양하리만치 자신의 삶의 행로를 놓고 어떻게 고민했는지가 바로 다가왔다. 그 기준이란 것들을 내가 소화한 언어로 풀어보자면,

1) 이 일이 나에게 의미가 있는가
2) 이 일을 끈기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열정과 에너지가 있는가, 혹은 열정과 에너지를 투자할 만한 일인가
3) 이 일에 필요한 능력들을 실제로 내가 갖추고 있는가, 그래서 그 능력을 사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실제적 이익을 베풀 수 있는가

이상 세 가지였다. 안철수가 시장직을 놓고 고민하는 이유는 인터뷰 당시에는 두 번째 기준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울 시장에 출마하게 된다면 (그리고 당선된다면) 지금 당장 서울대에서 맡고 있는 일을 그만둬야 할텐데, 그것은 자신의 원칙과 신의를 어기는 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일(정치판)에 뛰어들게 되면 자신의 생각에 최소 10년은 이 일을 해야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끈기가 자신에게 있는지 되묻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1번과 3번은 평소에 나도 하던 생각인데 2번에 대해서는 어떤 일을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2번에 대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대학원에 진학했기 때문에 지금 휘청휘청하고 있다는 사실도. 
한 번 대학원 진학을 결심한 이상 최소 2년간은 앞뒤 양옆 바라보지 않고 이 일에 매진할 만한 열정과 마음가짐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매학기가 끝날 때마다 다음 학기를 계속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했고, 그 질문에 대해 큰 확신이 있어서라기보다 어떻게 하다보니-_-;;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 여기까지 온 이상 그만두기는 아깝다가 솔직한 지금의 심정이다. 

끈기와 성실. 정말 나에게 힘든 단어들이다. 논문의 여부를 떠나서 일단 이번 학기를 다니기로 한 이상 논문까지 쓰겠다고 작정하고 다닌거나 다른 없으니 최소 4개월 간 끈기있게 도전해....볼까-_-;;;;;;; 
일단 오늘은 치마가 터질 것 같아서 집에 가고 싶지만 꾹 참고 공부해야지. 
이 다음 스텝에 대한 기대감만큼이나 착실하게, 차근차근, 내공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by 아애 | 2011/09/06 21:09 | 트랙백 | 덧글(6)
이태원 FEVER
장장 몇 개월에 걸쳐 받은 완의 카메라 사진들을 올리려고 하는데 어쩐 일인지 업로드가 안된다. 읭? 
그러나 내일 또 이태원 FEVER 2차가 계속될 예정이니 한꺼번에 올려야지 ㅋㅋㅋㅋㅋ 
아마 이건 내 예상이지만 2차 사진은 또 몇개월쯤 뒤에 받게 될테니 겨울 쯤에나 올리게 될 거야 

어제는 최선생님을 한 달만에 만났다. 정신 나간 듯한 잠적 이후로 일방적으로 연락을 피하고 난 후 처음 뵙게 된 선생님.
그런데도 선생님은 만나자마자 날 안아주시고 손님들이 가신 후 따로 불러 기도까지 해주셨다.
둥 말대로 선생님 노벨평화상 줘야함 스웨덴으로 가셔야 함
선생님은 예상했던 대로 칼을 뽑았으면 뭐라도 썰어야지 라고 하시며 논문을 쓰고 나가라고 하셨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대학원 논문은 뭐 거창하고 독창적인 거 바라지 않는다고, 방법론적인 것들을 익히는 과정이라고 하셨다.
1년 동안 늘 들어왔던 말이다. 
그래 쓰려고 하면, 뭐든 시작하려고 하면 안 될 게 뭐가 있겠나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만 그 '어떻게'가 날 아직 한숨짓게 한다. 

어찌 되었건 난 9월에 토익을 볼 거고 하반기에 원서를 몇 군데 넣으려고 한다. 
선생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정 그렇게 더 이상 학교에 못 있겠으면 다음 학기에 논문 대강 마무리 하고 취직하고 그 다음에 심사에 넣자고 하셨다. 말은 쉽지 이게 더 힘든 거다-.-;;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난 다음 학기에 수업 2개를 듣고, 3학기 연속 조교장을 하고, 논문을 쓰면서 취직 준비를 합니다. 
이게 가능한 시나리오인가 ㅋㅋㅋㅋㅋㅋ

자우림의 고래사냥 영상을 보면서 뭔가에 하나 미치려면 저만큼은 미쳐야겠구나 생각을 했다.
내 청춘, 내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곳과 사람들을 어서 만나고 싶다. 
블로그에 찌질찌질거리고 있지만 마음 속에서는 조금씩 전투력을 쌓고 있다. 
어느 때보다 간절한 내 하나님. 마지막으로 간절히 기도한 게 언제인지 생각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 때 이렇게 기도했던 것 같다.
내 모든 것이 해체되더라도, 그 시간이 공허하게 느껴지더라도 그렇게 돌아가서라도 하나님을 정말 제대로 알 수 있다면 그렇게 해달라고. 
이제 바닥을 찍었으니 올라갈 일이 남았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 
by 아애 | 2011/08/11 11:51 | 트랙백 | 덧글(2)
Comment faire ?
오랜만의 명절맞이 광주 나들이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고 있다. 명절에 광주를 오는건 상당히 오랜만이지만 일년에 한두번은 꼭 이렇게 외가 식구들이 모인다. 이제는 조카들도 제법 생겨서 삼대가 모이면 스무 명 넘기는 건 예삿일이다. 아무리 친척들을 핸드폰에 가족 폴더로 정리한다 하더라도 이 스무 명 넘는 가족 한명한명과 마음이 맞을 수는 없는 일이기에 외가 친척들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는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2박 3일 동안 광주에 있으면서 지난 학기 최선생님 수업 비블리오그라피 중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을 가져와 읽었다. 1920-40년대의 미국 흑인 여자들의 얘기였다. 내 외로움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지 말자고 몇 년 전에 다짐한 이후로 나는 조금씩 더 외로워졌다. 하지만 술라(책 제목이자 주인공 이름이다)의 말대로라면 이 외로움은 내가 선택한 외로움이다.

우리 모두는 끼인 존재이다. 가령 난 지극히 한국인이지만 5% 정도는 프랑스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본적은 광주지만 서울 사람(그렇지만 야구를 볼때는 광주사람 행세를 함). 그리고 그레고리력 21세기를 살아가지만 새예루살렘을기다리는 (혹은 기다려야만 하는?) 이런 종류의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다. 문제는 이 끼인 상태라는 건 굉장히 피곤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광주 사람이 광주에서만 살 때는 ~하요잉 하는 사투리를 의식하며 못하지만 다른 지역에 살다 광주에 돌아오면 그 '잉' 소리가 거슬리는 것과 같다. 한 쪽만 있으면 의식할 일이 없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모두는 어떤 식으로건 이런 상태를 피할 길이 없다. 이 상태를 인지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바깥 고속도로는 아비규환이다. 정체가 심해 다른 길로 피해왔건만 상태는 더욱 심하다. 시간이 흐르면 해결이 되겠지만 지금 내가 하는 생각은 시간이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by 아애 | 2011/02/05 21:21 | 트랙백 | 덧글(2)
자꾸만 어디로 가고 싶어
1.
이름도 거창한 2010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사전교육을 받고 왔다. 경복궁 뒤쪽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삼청동 갈 때 종종 경복궁 옆길로 걷기도 하고, 경복궁도 가봤는데 국립민속박물관은 이번이 처음. '국립'박물관답게 잘 해놨더군.

다른 얘기지만, 일단 진로를 석사 이후에 경제생활에 중점을 두는 쪽으로 마음을 두고 있다.
막상 공부를 시작하게 되면 어떻게 또 생각이 변할지 모르겠지만 공부를 쭉 할지도, 한다면 계속 프랑스어를 할지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내가 무슨 재주로 돈 안 벌고 사나, 석박사유학까지 하며 10년 정도의 생활을 하겠다는 의지가 없다. 솔까말 그 이후의 시간도 경제력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석사 끝나는 대로 구직활동을 해야하는데, 이 구직이라 함은 결국 어떤 형태든지 간에 회사라는 곳을 들어가겠지?
이제까지의 내 행로로 보면 대기업 지원은 커다란 무리수ㅋㅋ
예를 들어 지금 하려는 일 같은 유네스코 포럼 대행사에 들어간다고 치자.
잘 모르겠지만 아마 여기는 국제회의 관련 대행사겠지?
회사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충 직원 규모와 하는 일이 어림짐작이 가능하다.

또 다른 얘기를 하자면, 누군들 장래희망이 기업의 소모품이에욤 이겠느냔 말이지.
날 때부터 전 모기업의 나사 한 개가 되는 게 꿈이었어욤 이겠어.
다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주고 나 아니면 안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겠느냔 말이지.

오늘 유네스코 세계대회에서 문화관광부 한 국장이 와서 소개 인사를 하면서 이 행사를 문화올림픽이라고 했다.
우리가 88올림픽 유치를 잘해서 세계에 이름을 알린 것처럼, 이 행사를 통해서 G20을 잘 치를 수 있는 나라라는 걸 보여주겠다는 얘기겠지.
다만 이 문화올림픽은 지성인들의 축제. 일반인들이 참가하기도 시청하기도 힘들다.

이 5일 간의 행사를 위해 정말이지 수많은 사람들이 크게 작게 일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일을 같이 해나가면서 서로의 호흡을 맞춰 가는 일이 이 분야의 매력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 처음으로 이 일도 어쩌면 결국 모두가 하나의 부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업에 들어가서 하나의 부품이 되든지, 국제회의라는 분야에서 하나의 부품이 되든지. 두 개의 다른 카테고리의 문제인 것이다.

물론, 내 능력이 출중해서 나 아니면 이만큼의 일을 커버하고, 이만큼의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테지.
어차피 무슨 일을 한다 해도, 전문분야에서 게이지를 올려서 프리랜서로 독립한다고 해도 결국 모든 일이란 것은 나 혼자만 하는 일은 없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된다 해도 편집자가 필요하고 출판사 직원 그 외 다수가 함께 책을 만드는 거니까.

그러니까 결국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
요즘같이 기분이 별로일 때는 버스를 타고 가도 내 옆에 다른 사람이 앉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진다.
이건 작년 리옹에 있을 때 처음 생긴 못된 현상.
마음이 이럴 때는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질주하면 분노 게이지가 최소 30% 최대 70%까지 하감한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2.
아빠와 내일 탈 북한산 코스를 논의하다가 크로아티아 삼천포로 빠져서 한 시간 가량을 검색에 검색을 했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
크로아티아는 4년 안에 내가 아빠 경비의 50%를 대줄 수 있는 그 날 가기로 했다.


3.
내 컴플렉스 중의 하나는 나에 대해 사고가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
이거 때문에 주변 사람 배려는 고사하고 있던 눈치마저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학교 사람 한 명과 우연히 이야기하다가 난 그래도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가 판단이 비교적 잘 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사람은 이미 나에게 이 말을 했었는지조차 기억에 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말 한 마디에 마음 속에 있던 큰 짐 하나가 작은 짐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답도 없는 생각들 같아 보이지만 그 생각들의 끝에도 답은 있다.
나는 나아지고 있어.
예전으로 되돌아 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
by 아애 | 2010/05/07 23:32 | 트랙백 | 덧글(0)
지난 5년 3개월을 시간을 돌이켜본다.

지금 다니는 교회는 아무래도 교회 특성상 새신자보다는 교회 점핑을 해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아직 대학부 생활이라든지 사역모임 같은 것들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볼 기회는 없었지만, 전 교회에 비해 이 교회의 좋은 점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들을 종종 듣고 있다. 아마 담임목사님의 성격상 이 교회가 가지는 대안교회적인 면이 많이 있다보니 그런 것 같다.

나 역시도 온누리 대학부에서 5년 3개월 동안 지내면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이 시대에도 살아 계시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첫 공동체 생활도 하게 되었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일종의 한계(이것은 교회의 한계였다기보다도 내 자신의 한계가 컸다.)에 부딪히면서 교회를 옮기게 되었다. 5년 3개월이라고 쓰고보니 내 이십대의 꼭 절반만큼을 이 교회에 담았었다. 물론 그 중간에 6개월씩 두 번의 타지 생활을 하기도 했었고, 적만 그곳에 두고 주일 예배조차 제대로 드리지 않은 시간들도 있었다.

나는 온누리에서 처음 믿음을 갖게 되었고,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바른 믿음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었다. 다른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왔다든지 하는 사람을 온누리에서도 종종 보았지만 이 교회를 다니면서 그 전 교회에서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교회를 옮긴 사람들을 보면서 온누리가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교회라는 사실이 감사하다.

5년 동안 늘 해왔던 생각이고, 나눴던 말이지만 정말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한 게 아니었다. 이만큼 학교를 다니면서도 학과 생활이라는 게 늘 어색하고 불편한 옷을 입은 것만 같은데 혈혈단신 홀몸으로 이삭 공동체에 가서 적응을 하네 마네 하는 생각도 없이 잘 붙어 있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새삼스럽게 이 생각이 또 드는 것은 지금 다니는 이 교회에서도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3월 둘째 주 첫 예배를 드리고 와서 시절 좇아 꼴을 먹이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이후에 했던 1년 간의 임원단 생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간이지만 5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보자면 이 시간과 이 때 만난 사람들 모두 역시 선물이다. 드림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다. 두번째 가족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은 건 단순히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동고동락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고, 그 평생 이후의 삶을 같이 꿈꿀 수 있는 영적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 관계를 통해서 배우게 된 것들이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많다.
사람 가려 사귀는 데 이력이 난 나인데,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할만한 사람(이런 표현이 읽는 누군가에게는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난 정말 모든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봐왔고 보고 있다.)이라고는 없는데 그 사람들과 이만큼 지내게 된 것은 그 사람 개개인을 넘어선, 기독교적 표현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 안의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만남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다음은 내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나는 앎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알아가게 되는 지적 만족이 다른 만족들보다 나에게 크게 느껴진다. 이 욕구가 말씀에 대한 욕구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바이블 아카데미를 비롯한 많은 양육 프로그램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기도 한데 온누리 대청은 BA 필수코스를 CDC 다음 CBC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BEE 갈라디아서 프로그램을 수료하면서 그 이전과는 다른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의 초석을 닦을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전코스, 리더십 코스 등을 수료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은 구현우 목사님의 근 한 학기 동안의 로마서 강해 설교. 솔직히 말하면 이 시간 이후로 2-3년 동안 신앙적 성장이 거의 없었던 거나 다름 없다. 강해 설교라는 것을 처음 들어봤었는데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고 그 말씀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깊이 알게 되었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왜 기독교는 결국 모든 교리가 십자가를 관통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해 알게 되면서 삶의 초점이 바뀌게 되었다. 이 이후에 BEE 로마서 프로그램을 신청한 적이 있었는데 결국 수료는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슈퍼대형교회인만큼 대학부 생활을 하면서도 대청 프로그램 등을 통해 위 아래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의 신앙을 맛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장로교이긴 하지만 초교파적인 모습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도 솔직히 교파에 대한 이해가 거의 전무하다.


교회를 다니면서 힘들었던 때도 있었다. 신앙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겪는 문제들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과정 중에 있다. 제일 먼저 다가온 문제는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었다. 이것은 소위 성령체험과 연결되는 문제였다. 사람들은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면서.."라는 식의 말들을 많이 했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나온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방언이었다.

나는 방언을 못한다. (받지 못했다라고 해야 할까?) 온누리에 처음 와서 방언을 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 수가 많음에 놀랐다. 방언을 구하고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왜 구하는데 받지 못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언을 깊은 마음으로 간절히 구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나는 방언과 같은 소위 성령 사역이라고 하는 것들을 깊이 믿지 못했다. 이것을 내 믿음 없음을 탓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사도행전을 보면서 처음 오순절사건 때 주신 방언은 선교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 그리고 솔직히 이 이후에도 나는 방언을 통해 어떤 신앙의 더 깊은 단계로 들어가고 싶어서 하기 원했다. 방언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면 더 깊이 기도할 수 있다고 하기도 했고, 솔직히 방언 기도 정도는 좀 해줘야 믿음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도 믿음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먼저 내가 가지고 있는 선교에 대한 생각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 나에게 선교란 철저하게 남의 일이었다.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니었다. 이런 나를 돌이켜보면서 내가 지금 방언을 구할 때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으로 방언 구하기를 멈췄었다.

지금도 온누리에서 잘 배웠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는 선교사가 되든지 보내는 선교사가 될 뿐이다.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들었던 방언에 대한 생각 이후 온누리에서 신앙 생활을 하면서 선교적 마인드에 대한 초석을 잘 닦을 수 있었다.

선교에 대한 생각들이 정립되어 가면서도 나는 여전히 방언을 하지 못했고(간절하게 구하지 않았기도 했다.) 방언을 하고 못하고가 본질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내 신앙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방언을 하는 누군가의 성령님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은사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어제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라는 옥성호 씨의 책을 읽었다. 제목부터 대놓고 김우현 감독의 <하늘의 언어>를 짚고 넘어가는 책이다. 이 시대의 방언이 진짜인가 가짜인가의 문제보다도 이제껏 내가 가져왔던 그 모든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만남, 성령 사역 등에 대한 문제의 답을 찾은 듯한 기분으로 책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머리 속이 점점 정리되어져 갔다. 이 책 한 권으로 이것이 정답이다 라고 말하기는 섣부르지만 이제껏 내가 5년간 해왔던 질문에 대해 그 누구도 이만큼 속시원하게 정리해준 적이 없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나의 문제는 이 복음이 참 복음이라면 내 삶에 과연 열매가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내 삶의 초점이 변하였다고는 하지만 내 모든 삶의 모습이 변하지는 않았다.
또 한 가지는 나를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 있는가이다. 여기서의 초점은 부활과 재림이다. 나는 정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대하고 기다리는가? 그렇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 기다린다면 기다리는 사람으로서의 태도가 있어야 하는데 나에게는 그런 태도가 없다. 이 세대의 모든 민족과 열방들이 복음 듣는 그 날을 기다리지 않으며, 그 일을 하기 원하지도 않는다.
두 가지가 모두 종말론적 삶의 태도라는 같은 문제로 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 하루 종일 정말 수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아직 그 생각들을 다 정리하지 못했지만 정리되지 못한 생각이라 할지라도 기록할 필요를 느껴 이 포스팅을 올린다.

늘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by 아애 | 2010/04/26 18:47 | ebenezer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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