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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7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만 알아보는 내가 쓴 글
2010/04/30   이석원이라는 사람 [1]
2010/04/30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1]
2010/04/26   지난 5년 3개월을 시간을 돌이켜본다. [4]
2010/04/18   눈이 붕어만해졌어 [5]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만 알아보는 내가 쓴 글
요며칠 기분이 저조한 데 크게 일조한 프랑스와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전 책장 몇 장 깨작깨작할 생각으로 시작한 책을 또 죽자고 끝까지 다 읽어버렸네. (얇기도 얇다)
댈 바는 아니지만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은 관계의 절절한 안타까움(이라고 쓰고 궁상이라고 편하게 읽는다)이 처음부터 끝까지 밀려온다.

그리고 어제밤 ㅈㄹ이랑 한강에서 캔맥주 드링킹하면서 나눈 얘기들.
이십대 후반 진입을 눈앞에 놓고 있는 장기연애자들의 고민은 얼추 비슷해 보였다. 다음주 수요일에 만나기로 한 또 한 명의 동일한 상황에 놓여 있는 친구 얘기도 비슷하겠지 싶다.

생각들은 대충 윤곽을 그려가고 있다.
남자친구는 나를 늘 이상주의자라고 말한다.
답도 없는 생각의 끝에도 답이 있다구.

by 아애 | 2010/05/07 00:29 | brouillon | 트랙백 | 덧글(0)
이석원이라는 사람
글쎄,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 딱 여기까지만이었는데 이석원이 쓴 <보통의 존재>를 또 후딱 주파하였다. 이게 다 무한도전 4주차 결방 때문이라능. 생각해보니 기아의 저조한 성적도 한 몫하고 있군 ㅋㅋ

이 사람의 모든 인생관과 소위 그의 매뉴얼에 동의하지는 못하겠지만 힘을 뺀 그의 담담한 말투는 좋았다.
나도 힘을 좀 빼야 할텐데. 요즘은 스스로 느끼기에도 힘이 잔뜩 들어가서 못 볼 지경을 많이 연출하고 있다. 그거슨 곧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민ㅋ폐ㅋ
나 역시도 끝나지 않은 사춘기가 진행중이고 그 대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지.
나에 대한 과도한 에너지 때문에 그게 바깥으로는 공격적인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말하자면 인류지향적인데 바로 옆의 지인 지향적이지는 않달까. 못됐지 좀.
이 역시도 과정중드립치고 있지만 속히 완결지어야 할 문제다. 이제는 내가 못봐주겠으니까.

아, 그리고 가족은 역시 궁상이다. 그래도 어쩌겠어. 소중한걸.
by 아애 | 2010/04/30 15:25 | brouillon | 트랙백 | 덧글(1)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뒤라스의 <모데라토 칸타빌레>를 읽었다. 현대프랑스소설에서 중간고사 이후에 뒤라스의 <영국연인>을 읽어야 해서 뒤라스를 맛보는 의미로. 굉장히 짧다.
프랑스 소설은 이제 애지간하면 원어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 그 자체의 느낌은 있지만 100% 다 이해할 수 없는 것과 언어에서 풍겨져 나오는 느낌은 생략된 채 내용을 100% 이해하는 것 중의 선택이다.
누보로망 세대는 이전까지 시대에서 소설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서사가 의도적으로 많이 해체되고 약해진만큼 적어도 이 시대의 소설들은 불어로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이제 좀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다행이다. 좋다.
by 아애 | 2010/04/30 09:13 | brouillon | 트랙백 | 덧글(1)
지난 5년 3개월을 시간을 돌이켜본다.

지금 다니는 교회는 아무래도 교회 특성상 새신자보다는 교회 점핑을 해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아직 대학부 생활이라든지 사역모임 같은 것들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볼 기회는 없었지만, 전 교회에 비해 이 교회의 좋은 점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들을 종종 듣고 있다. 아마 담임목사님의 성격상 이 교회가 가지는 대안교회적인 면이 많이 있다보니 그런 것 같다.

나 역시도 온누리 대학부에서 5년 3개월 동안 지내면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이 시대에도 살아 계시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첫 공동체 생활도 하게 되었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일종의 한계(이것은 교회의 한계였다기보다도 내 자신의 한계가 컸다.)에 부딪히면서 교회를 옮기게 되었다. 5년 3개월이라고 쓰고보니 내 이십대의 꼭 절반만큼을 이 교회에 담았었다. 물론 그 중간에 6개월씩 두 번의 타지 생활을 하기도 했었고, 적만 그곳에 두고 주일 예배조차 제대로 드리지 않은 시간들도 있었다.

나는 온누리에서 처음 믿음을 갖게 되었고,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바른 믿음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었다. 다른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왔다든지 하는 사람을 온누리에서도 종종 보았지만 이 교회를 다니면서 그 전 교회에서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교회를 옮긴 사람들을 보면서 온누리가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교회라는 사실이 감사하다.

5년 동안 늘 해왔던 생각이고, 나눴던 말이지만 정말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한 게 아니었다. 이만큼 학교를 다니면서도 학과 생활이라는 게 늘 어색하고 불편한 옷을 입은 것만 같은데 혈혈단신 홀몸으로 이삭 공동체에 가서 적응을 하네 마네 하는 생각도 없이 잘 붙어 있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새삼스럽게 이 생각이 또 드는 것은 지금 다니는 이 교회에서도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3월 둘째 주 첫 예배를 드리고 와서 시절 좇아 꼴을 먹이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이후에 했던 1년 간의 임원단 생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간이지만 5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보자면 이 시간과 이 때 만난 사람들 모두 역시 선물이다. 드림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다. 두번째 가족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은 건 단순히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동고동락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고, 그 평생 이후의 삶을 같이 꿈꿀 수 있는 영적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 관계를 통해서 배우게 된 것들이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많다.
사람 가려 사귀는 데 이력이 난 나인데,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할만한 사람(이런 표현이 읽는 누군가에게는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난 정말 모든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봐왔고 보고 있다.)이라고는 없는데 그 사람들과 이만큼 지내게 된 것은 그 사람 개개인을 넘어선, 기독교적 표현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 안의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만남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다음은 내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나는 앎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알아가게 되는 지적 만족이 다른 만족들보다 나에게 크게 느껴진다. 이 욕구가 말씀에 대한 욕구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바이블 아카데미를 비롯한 많은 양육 프로그램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기도 한데 온누리 대청은 BA 필수코스를 CDC 다음 CBC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BEE 갈라디아서 프로그램을 수료하면서 그 이전과는 다른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의 초석을 닦을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전코스, 리더십 코스 등을 수료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은 구현우 목사님의 근 한 학기 동안의 로마서 강해 설교. 솔직히 말하면 이 시간 이후로 2-3년 동안 신앙적 성장이 거의 없었던 거나 다름 없다. 강해 설교라는 것을 처음 들어봤었는데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고 그 말씀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깊이 알게 되었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왜 기독교는 결국 모든 교리가 십자가를 관통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해 알게 되면서 삶의 초점이 바뀌게 되었다. 이 이후에 BEE 로마서 프로그램을 신청한 적이 있었는데 결국 수료는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슈퍼대형교회인만큼 대학부 생활을 하면서도 대청 프로그램 등을 통해 위 아래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의 신앙을 맛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장로교이긴 하지만 초교파적인 모습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도 솔직히 교파에 대한 이해가 거의 전무하다.


교회를 다니면서 힘들었던 때도 있었다. 신앙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겪는 문제들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과정 중에 있다. 제일 먼저 다가온 문제는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었다. 이것은 소위 성령체험과 연결되는 문제였다. 사람들은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면서.."라는 식의 말들을 많이 했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나온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방언이었다.

나는 방언을 못한다. (받지 못했다라고 해야 할까?) 온누리에 처음 와서 방언을 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 수가 많음에 놀랐다. 방언을 구하고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왜 구하는데 받지 못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언을 깊은 마음으로 간절히 구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나는 방언과 같은 소위 성령 사역이라고 하는 것들을 깊이 믿지 못했다. 이것을 내 믿음 없음을 탓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사도행전을 보면서 처음 오순절사건 때 주신 방언은 선교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 그리고 솔직히 이 이후에도 나는 방언을 통해 어떤 신앙의 더 깊은 단계로 들어가고 싶어서 하기 원했다. 방언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면 더 깊이 기도할 수 있다고 하기도 했고, 솔직히 방언 기도 정도는 좀 해줘야 믿음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도 믿음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먼저 내가 가지고 있는 선교에 대한 생각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 나에게 선교란 철저하게 남의 일이었다.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니었다. 이런 나를 돌이켜보면서 내가 지금 방언을 구할 때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으로 방언 구하기를 멈췄었다.

지금도 온누리에서 잘 배웠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는 선교사가 되든지 보내는 선교사가 될 뿐이다.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들었던 방언에 대한 생각 이후 온누리에서 신앙 생활을 하면서 선교적 마인드에 대한 초석을 잘 닦을 수 있었다.

선교에 대한 생각들이 정립되어 가면서도 나는 여전히 방언을 하지 못했고(간절하게 구하지 않았기도 했다.) 방언을 하고 못하고가 본질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내 신앙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방언을 하는 누군가의 성령님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은사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어제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라는 옥성호 씨의 책을 읽었다. 제목부터 대놓고 김우현 감독의 <하늘의 언어>를 짚고 넘어가는 책이다. 이 시대의 방언이 진짜인가 가짜인가의 문제보다도 이제껏 내가 가져왔던 그 모든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만남, 성령 사역 등에 대한 문제의 답을 찾은 듯한 기분으로 책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머리 속이 점점 정리되어져 갔다. 이 책 한 권으로 이것이 정답이다 라고 말하기는 섣부르지만 이제껏 내가 5년간 해왔던 질문에 대해 그 누구도 이만큼 속시원하게 정리해준 적이 없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나의 문제는 이 복음이 참 복음이라면 내 삶에 과연 열매가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내 삶의 초점이 변하였다고는 하지만 내 모든 삶의 모습이 변하지는 않았다.
또 한 가지는 나를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 있는가이다. 여기서의 초점은 부활과 재림이다. 나는 정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대하고 기다리는가? 그렇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 기다린다면 기다리는 사람으로서의 태도가 있어야 하는데 나에게는 그런 태도가 없다. 이 세대의 모든 민족과 열방들이 복음 듣는 그 날을 기다리지 않으며, 그 일을 하기 원하지도 않는다.
두 가지가 모두 종말론적 삶의 태도라는 같은 문제로 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 하루 종일 정말 수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아직 그 생각들을 다 정리하지 못했지만 정리되지 못한 생각이라 할지라도 기록할 필요를 느껴 이 포스팅을 올린다.

늘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by 아애 | 2010/04/26 18:47 | ebenezer | 트랙백 | 덧글(4)
눈이 붕어만해졌어

며칠 전 누가 말해줬다. 침대에서 책 읽는 건 안 좋은 습관이라고. 침대에서 책을 읽거나 잠자는 것 외의 활동을 하면 몸이 장소를 기억해서 쉽게 잠에 들지 못한다고 했다. 내가 그래서 잠을 잘 못 자나? 했다. 요즘은 그래도 침대에서 책만 읽지만 예전에는 침대에서 컴퓨터도 하고 군것질도 했고 심지어 공부도 했었다. 잠드는게 걸리는 시간이 꽤 긴 편인데 운동을 하면서 그 시간이 조금은 짧아졌다.

각설이 길었다. 어제도 침대에서 자기 전에 책을 읽었다. 난 이 시간을 아주 좋아한다. 침대를 고를 때 머리맡에 기댈 수 있게 아무런 장식이나 받침이 없는 걸 골랐다. 그래서 내 침대 머리맡 주변에는 늘 2-3권의 책과 잡지들이 놓여있다. 하지만 기대는 건 중요한 거니까 나중에 내 방이 생기면 침대 머리맡 옆에 조그만 서랍장을 놓아두고 싶다.
침대 머리맡에 기대고 앉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다. 그냥 조금 읽다가 잘 생각이었다. 그런데 새벽 네시까지 다 읽어버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내 눈은 위만 부은게 아니라 눈 아래까지 부었다. 밤에 읽으면서 티셔츠 소매부분이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서 결국 곽티슈를 옆에다 놓고 읽었다.

읽으면서 이혜경의 <길 위의 집>이 생각났다. 가족이 엄마를 잃어버린 사연. 그런데 길 위의 집 마지막 부분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프롤로그는 한 줄 한 줄 생각이 났는데, 길 위의 집에서의 엄마는 마지막에 찾았던가? 찾았던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전화를 받고 엄마를 데리러 간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신경숙의 소설에서 엄마는 죽었다. 귀신이 되어서 이 집 저 집을 찾아 다니고, 소설 속의 '너'는 끝내 엄마를 찾지 못한 채 바티칸에 있는 피에타 상 앞에서 구원을 받는다.
소설의 두번째 문장에 '너'가 나왔을 때 그 이질적인 호칭에 깜짝 놀랐다. 며칠전 현대불소설 수업에서 최선생님이 vous로 시작하는 소설이 20세기 중반에 처음 나왔다는 얘기를 하면서 그 작가와 작품 얘기도 언급하신게 희미하게 생각이 났다.

내 엄마, 내 할머니, 내 가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른 나라의 가족도 이런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가족은 구질구질한 구석이 있다. 그 구질구질함이 끈질기게 평생을 옭아매어서 많은 소설에 그토록 숱한 소재들을 제공하는 지도 모르겠다. 하루키가 그 당시에 각광을 받았던 건 정말 가족에게서 자유로운 그의 인물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 엄마 소원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우리 엄마의 소원은 뭐였을지 궁금했다. 물어봤다. 엄마는 너희 셋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거라고 했다. 내 나이보다 더 오래 한 직장을 다니면서 지금은 그럴듯한 자리까지 승진한 엄마다. 아반떼XD를 타고 다니면서 엄마 정도 직책에 남들 보기가 그래서 조금 더 큰 차를 사고 싶어하는 우리 엄마. 그런 거 말고 엄마 소원은 없냐고 했더니 엄마는 그냥 소리없이 웃었다. 그런건 왜 물어보냐고.
신경숙의 소설이 말했다. 엄마도 걸음마를 처음 뗀 시간이 있었고, 세 살이었던 적이 있었고, 소녀 시절, 학생 시절이 있었다고. 얼마 전 엄마 아빠의 연애 시절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내 나이에 이미 내가 있었던 우리 엄마. 그런 우리 엄마도 아빠와 연애를 했고, 고민을 했고, 결혼을 했다.

엄마가 겨울부터 4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시간을 비워놓으라 했다. 같이 충주에 가자고. 단양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시험기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봐서,라고 대답했다. 시험기간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목요일에 시험이 끝났다. 토요일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난 패러글라이딩이 타러 가고 싶었다. 토요일이 아니면 가기 힘들고 5월은 결혼식 등이 많아서 토요일에 쉽게 시간이 나지 않았다. 엄마에게 패러글라이딩을 타러 가겠다고 했다. 엄마가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충주인지 단양인지를 다음주 토요일에 새벽6시에 잠실역인가까지 가서 단체버스를 타고 가게 되었다.
다음주 토요일에 패러글라이딩 가는 것보다 엄마랑 그 지방도시를 가는 걸 더 행복하게 여기기로 했다. 아니, 행복하게 여겨만졌다.
세상의 모든 딸년들은 못됐다. 나는 못돼쳐먹었다.

엄마는 아직 잔다. 교회 가기 전에 엄마한테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가야겠다.

by 아애 | 2010/04/18 09:48 | brouillon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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